가상자산의 토대가 되는 기술인 블록체인이 '초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2009년 중앙화된 금융이 만드는 사회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던 것처럼, 사회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모였다. 아시아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축제인 '비들 아시아 2023', 웹3의 첫 번째 주창자인 개빈 우드가 주축이 된 '폴카닷 해커톤', 그리고 이더리움 개발자들의 모임인 '이드서울'이 바로 개발자들의 모임터다.

투기의 대명사가 된 가상화폐
최근 코인 업계는 규제 칼날과 사회적 비판의 회초리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으로 촉발된 비판은 코인충이라는 비속어까지 언론 지상에 등장시켰다.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는 올해 70% 가까이 오른 비트코인 가격을 계속해서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투기 목적으로 삼다 보니 규제 외 지역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거래로 본질이 위협받는 상황에 몰렸다. 가상화폐가 24시간 주 7일 거래할 수 있는 코인으로 인식되고 이를 통해 짧은 기간에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을 거둬 조기 은퇴할 수 있다는 허황된 욕망이 판을 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열린 블록체인 개발자 행사들은 이 같은 세간의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블록체인의 근간을 형성하는 탈중앙화는 중앙화된 지배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다. 무분별한 투기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사기를 쳐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상황을 조장하기 위한 탈중앙화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블록체인의 초심으로 돌아가 중앙화된 구조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 특히 ESG(환경·책임·투명경영)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기후위기, 블록체인으로 넘어선다
아시아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축제인 비들 아시아 2023에서는 기후 문제가 주요 주제로 부상했다. 특히 탈중앙화 금융을 ESG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재생금융(리파이) 프로젝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리파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셀로의 마렉 올제브스키 공동창립자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블록체인과 웹3를 활용한 기후 문제 해결을 논하는 대담을 가졌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블록체인, 웹3 생태계의 기후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환경은 우리 사회를 모두 둘러싸고 있는 문제"라며 "블록체인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당장에라도 뛰어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제브스키 공동창립자는 "블록체인은 이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를 규합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행동을 촉진하는 데 가상화폐가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카카오에서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인 클레이튼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협력 체제를 발표했다. 국경을 넘어서는 ESG 활동을 전개하는 탈중앙화조직(DAO)인 크립토워커스다오, 그리고 전력 반도체 기반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프로메테우스스페이스파워와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 고도화 초점
이드서울과 폴카닷 해커톤에서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물결이 이어졌다. 과거 새로운 코인 발행과 거래에 초점을 맞춘 디파이 서비스가 해커톤의 주류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블록체인의 보안성을 높이고 확장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기술인 영지식 증명과 레이어2와 같은 기술을 들고 나온 프로젝트들이 두드러졌다.
이드서울에서는 영구귀속토큰(SBT) 기술을 활용해 익명성을 담보하면서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배지 프로토콜이 최고 거버넌스 앱(월드코인) 상을 수상했다. 영지식 증명을 활용해 사용자의 정보를 보호하면서 가상화폐 지갑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크로스체인 AA 월렛 프로젝트도 베스트 사인(월드코인) 상을 수상했다. 폴카닷 해커톤에서도 영지식 증명을 활용한 생체인식 자산관리 플랫폼을 제안한 '브링 유어 온 페이스'가 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블록체인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가상화폐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프로젝트들도 주목받았다. 국내 가상자산 운용사인 하이퍼리즘은 이드서울에서 실시간으로 블록체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체인피드 프로젝트를 선보여 베스트 뉴섭 그래프 상을 수상했다. 한편 폴카닷 해커톤에서는 대체불가토큰(NFT)의 사기를 막기 위한 환불 기술을 선보인 팀이 주목받았다.